이혼변호사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을 주장한 것이 죽을 죄의 씨앗이었어요.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어찌 주인이 따로 있으리요"라고 강직하게 읊조리던 그의 말이 생생합니다.
여립이 죽고 사람에게 신물 났어요. 내 품에서 여립을 잃었던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을 멀리했지만, 먹고 살겠다고 여기까지 오는 이들을 내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1970년대 군인 출신의 사내가 물길을 바꿔 밭으로 만들어놓겠다고 폭약을 터뜨려서 죽도 능선을 끊어놓았어요. 그 충격과 공포는 아직 잊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물은 길을 바꾸지 않아서, 계획은 실패했어요.
원래 죽도竹島는 이름만 섬이고, 실제 섬이 아니었는데 군인 출신 사내의 욕심 탓에 정말 섬이 되었어요. 지금은 능선이 끊기고 인공 폭포가 생긴 곳을 "죽도 관문"이라 불러요. 내 상처를 보려고 등산을 오는 사람도 있답니다. 상처가 이젠 자랑이 된 셈이지요.
하지만 저는 100대 명산도 아니고, 200대 명산도 아녜요. 명산에 끼지 않은 덕분에 찾는 이가 드물어요. 그런데 오늘 월간山에서 나를 찾아왔어요..